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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

24년 6월 노르망디 여행

by 추_추 2024. 8. 19.

바쁜 봄날을 보내고 여름이라기엔 아직은 쌀쌀하던 6월의 초입,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코에 바람 넣고 싶어서 가까운 노르망디에 가벼운 마음으로 동료들과 워크샵을 다녀왔다. 

첫 목적지는 역시 지베르니.
이제까지 갔던 모든 지베르니 중 사람이 가장 많았다. 아니... 부슬비까지 내리고 문 열자마자였는데 진심 에버랜드 튤립축제 저리가라 수준이었다고... 그치만 역시 모네의 정원만이 주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몇 번을 가도 갈 때마다 '어휴, 사람 많아. 이제 그만 와야지!'라고 말하지만 어째서인지 얼마 시간이 흐르면 또 잠깐 다녀올까...? 싶어지는 것이다. 

부슬비가 내리는 초록의 정원을 거닐며 프로포즈하는 커플을 보면서 박수도 쳐주고
일로 가득했던 시간을 벗어나 천천히 (사람이 많아서 빨리 걸을 수 없음...) 흙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큰 쉼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늘 다시 여기에 가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귀여운 집과 정원의 조화
그리고 사실 이런 곳에 가면 제일 좋은 건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거니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그것도 보려고 마음 먹어야 보이는 거긴 한데, 늘 바빴던 시간대에 하던 일을 하지 않고 비일상의 장소에 와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유로워지는 그런 게 있다. 

나무 바닥 삐걱이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화가의 집
알록달록한 꽃으로 가득한 정원
손으로 뜬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비오는 주말 아침

생각보다 관람객이 많아서 일정이 지체되었다.
일정이 없긴 했는데(?) 역시 점심을 먹으려면 식사 시간 내에 다음 마을에 도착해야 했다.
모네의 집 앞에 있는 인상주의 미술관도 잠깐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그냥 따뜻한 커피나 한 잔씩 호로록 마시고 가기로 했다. 

순조롭게 한 시간 반을 달려서 무사히 옹플뢰르에 도착.
눈여겨 봐놓은 식당으로 가서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음식을 주문해서 천천히. 맛있게 먹었다. 
작은 항구가 있는 마을이니까 해산물도 잔뜩 먹기로 했다. 본식도 새우랑 홍합으로 골랐는데 어째서 사진은 없는 것일까..?
후식으로는 사과 크럼블에 커피. 사과가 유명한 지역이라서 안 먹으면 서운하기때문에... 지역특산물 절대 놓치지 않아요.

파리의 식당들보다 훨씬 투박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감성이 있다. 
우리 옆 테이블에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가 가족들이랑 밥을 먹고 있었기때문에... 그를 발견하고는 식당 잘 골랐나보다 싶어서 또 조금 뿌듯해함ㅋㅋㅋㅋ

날이 좀 환하고 따뜻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침부터 내내 비오고 흐리고 아주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음
하지만 여기서 여행을 멈출 순 없으셈...
저녁에 마실 시드르랑 뿌아레도 사고 너무 추워서 긴 소매 옷도 사 입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원래는 까망베르(동네 이름을 딴 치즈가 있음)를 가려고 했는데 (또) 시간이 애매해져버렸다...

얼레벌레 근처에 있는 퐁 레벡으로 타협했는데 동네가 정말 손바닥만해서 볼 것이 1도 없었음^^.... 순조롭게 망해가는 여행!
그냥 치즈나 하나 사고... 저녁에 먹을 고기 사서 숙소에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밤 9시 50분의 하늘
서서히 해가 길어지고 있을 때니까 이럴만도 하지...
숙소에서 신나게 고기 구워먹고 맛있는 와인 마시다가 한국 업체랑 줌 미팅도 하고(내가 알쓰라서 맨정신이었기때문에^^...)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먹고 대충 열한시쯤 숙소를 나와 루앙에 점심 먹으러 갔다. 

시내에서 주요한 곳들을 다 같이 둘러보면서 공부도 좀 하고 
일하러 오면 늘 대성당이나 잔다르크 성당 근처쪽을 벗어날 일이 없었는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쪽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거기서 본 귀여운 아기ㅠㅠ 
계획했던 식당이 만석이라 입장 실패하고 너무너무 맛없는^^ 일본식 라멘집에서 슬픈 점심을 먹었다. 

그리규 샹티이 성으로....
파리에서 엄청 멀진 않은데 묘하게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차로 갈 수 있을 때 한 번 씩 다녀오는 게 좋다. 
오말 공작의 아름다운 서재와 회화 컬렉션... 얼마만이야... 한 7년만에 온 것 같은디... 

또 생각보다 너무 신나게 관람을 하고 정원에서 귀여운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샹티이 크림이 탄생한 곳답게 크림을 한 사발 먹어야 이곳을 떠날 수 있음.

아이스크림과 와플에 잔뜩 올린 샹티이 크림
맛이 대단히 특별할 것은 없지만 그냥, 기분이니까ㅋㅋㅋ
여기도 예전엔 제법 자주 갔던 곳인데 이상하게 한 번도 이걸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14년만에 먹는 원조 샹티이
너무 맛있게 먹다가 스카프에 아이스크림 흘리고 남펴니한테 대박적으로 구박받음...

글구 근처에 너무너무 아름다운 개양귀비 꽃밭이 있었다.
6월 프랑스 근교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 양귀비꽃밭이 아닐까...
모네의 그림처럼 하늘하늘한 붉은 꽃들이 바람에 몸을 맡긴채 흐드러져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화가가 어떻게 이걸 안 그림?????
꽃받침 하고 있는 사진 오백장 찍음
근데 전부 다 칠갑산 콩밭 메는 아낙네처럼 나와서 올려놓을 수가 없는데 아무튼 즐거웠음

집에 와서 짐을 풀자 그 사이에 쏙 캐리어 안으로 들어가버린 나의 야옹이... 역시 집이 최고다
 
애초에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도 않았지만
가는 곳마다 계획한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고
너무 춥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로운 곳이라고는 퐁 레벡 뿐이었지만 너무 볼 것이 없어 허무한 여행 그자체였다. 
 
하지만 어떻게 여행이 매번 재밌고 늘 새롭고 감동적이고 막 그럴 수가 있겠음
이런 여행도 있어야 다음 여행이 더 재밌게 느껴지고 그러는 거 아니겠냐고
너무 많이 다녀온 곳들을 여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가니까 설렐 수가 없었던 것이지
지베르니도 옹플뢰르도 루앙도 샹티이도 아무 죄가 없다.
그냥 잘 먹고 자다 왔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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